중국 청자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이후 독자적인 기술과 예술성을 발전시켜 고려만의 청자 양식을 완성하였다. 이는 단순한 문화 수입이 아닌 적극적인 대외 교류의 결과이며, 의 문화 자립과 국제 교류가 함께 드러난다. 특히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의 대표 10세기 후반부터 13세기 후반까지 전성기를 누린 고려시대의 대표적 도자기이다. 초기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청자를 왕실에서 많이 사용하였으나, 이후 국산화가 추진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 도공들을 초빙하여 고려 땅에서 자체적으로 청자 생산이 시작되었다. 특히 전남 강진과 고창 등지에서 적합한 점토를 발견하여 본격적인 청자 제작이 이루어졌다.의 가장 큰 특징은 비색이라 불리는 은은한 청록색 유약과 상감기법이다. 상감기법은 금속공예에서 유래한 기술로 도자기에 적용한 것은 고려가 처음이다. 이는 문양을 음각으로 파고 그 자리에 흑백의 화장토를 메우는 방식으로, 정교하면서도 조화로운 문양 표현이 가능하게 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은 구름과 학을 상감기법으로 표현하여 불교적 이상세계를 상징하고 있다.고려청자는 생활 도구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종교적·예술적 의미를 지녔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는 꽃을 바치는 공양 문화가 활발했기에 꽃병, 술병, 다기 등의 다양한 기물이 제작되었으며 이는 신앙적 실천의 일부였다. 도자기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정신, 우주관을 담아낸 매개체였고, 그 안에 고려인의 미의식과 가치관이 반영되었다. [국내논문] 고려청자 / 김세용(세창도예 연구소) / 세라미스트 / 20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고려청자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고려청자의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자주성과 창조성이다. 처음에는 외국 문화를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자국화하는 과정에서 고려는 스스로의 예술적 정체성을 정립했다. 상감기법처럼 금속공예의 기법을 도자기에 응용한 것도 그러한 창조성의 결과라고 느껴졌다.또한, 도자기를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신앙과 생활이 결합된 매체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고려인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현대 사회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서적 결핍을 겪는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라 인상적이었다.